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루야마 호다카 (문단 편집) == 상세 == [[1984년]] [[1월 10일]], [[오사카부]] [[사카이시(오사카)|사카이시]]에서 태어났다. 니시야마토 학원 고등학교를 거쳐, [[도쿄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2006년 [[경제산업성]]에 들어간다. 원자력안전·보안원[* 지금의 원자력규제위원회]의 보안과 기획법규계장을 거쳐 2009년 관료를 그만둔다. 같은 해 마쓰시타 정경숙에서 공부를 한 뒤 졸업한다. 2012년 [[일본 유신회(2012년)|일본 유신회]]에 입당하고, 얼마되지 않아 오사카부 제19구 지부장에 취임했다. 같은 해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일본 유신회의 공천을 받아 [[오사카부 제19구]]에 출마해 [[자유민주당(일본)|자유민주당]]의 다니가와 도무, [[민주당(일본 1998년)|민주당]]의 나가야시 다카시를 꺾어 [[중의원]]에 당선되었다. 오사카 중의원 선거구 당선자 중에서는 최연소였고, 당시 28세로 최연소 중의원 3명 중 한 명이었다. 2014년의 [[이시하라 신타로]] 계열에 의한 일본 유신회 분당 당시 [[결속당]]의 [[에다 겐지]]와 유신회의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시장이 만드는 [[유신당]]에 합류했다. 같은 해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유신당 공천으로 출마해 다시 다니가와와 나가야시를 꺾고 재선한다. 그러다가 유신당이 분당하자 2015년 오사카 유신회로 이동, 정무조사회 부회장, 국회대책위원회 부위원장에 취임했다. 2017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3선한다. 2018년 4월에는 유신회의 [[후쿠이현]] 지부인 '후쿠이 유신의 모임'의 대표가 되는 등 승승장구하다가 2019년 5월 쿠릴 열도 방문 당시 "[[치시마 열도]]를 전쟁으로 빼앗자"라는 주장을 해 제명당하고, 7월 29일에 [[NHK당|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에 입당했고 입당 후 부대표가 되었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 지명 투표에서 뜬금없이 [[고이즈미 신지로]]를 뽑았다. [[https://www.nikkansports.com/m/general/nikkan/news/202009160000756_m.html|#]] ~~그것이 약속이니까... 음!~~ 한일 양국에서는 신지로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여간 유명한 사람이 아니다보니 셀프 투표했냐고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 지명 투표에서도 또 뜬금없이 [[다카이치 사나에]]를 뽑았다. 그러나 신지로와는 달리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총재 선거 이전까지는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보니 크게 이슈화되지 못하고 조용히 묻혔다.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관료 시절부터 열심히 노력해왔지만, 이제는 내 시간과 능력을 나 자신을 위해 쓰고 싶다"고 밝혔으며, 일전에 불화설이 있었던 하시모토 도루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오래 의원직을 유지할 생각이였다면, (당의) 창업자인 하시모토에게 싸움을 걸지 않았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